분류 전체보기44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본다 학기 초, 한 아버지가 상담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선생님, 우리 아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뭔가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요."당연한 마음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유아교육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시험 점수나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나는 그 아버지께 학급일지를 꺼내 보여드렸다.기록이 쌓이면 성장이 보인다나는 아이들의 하루를 매일 기록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 누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디서 멈칫했는지, 어떤 순간에 활짝 웃었는지를 짧게 적어둔다.처음에는 그냥 메모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쌓이면 전혀 다른 것이 된다.3월에 혼자 구석에서.. 2026. 2. 19. 스스로 고른 놀이는 다르다 어느 날 자유놀이 시간에 민재가 미술 영역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별다른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색연필을 집어 들고 그리기 시작했는데, 30분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다 그리고 나서는 나에게 가져와 "선생님, 이거 봐요"라고 했다. 종이 가득 알 수 없는 선과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민재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우리 집이고, 이건 엄마, 이건 강아지."내가 주제를 정해줬다면 30분을 앉아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선택이 주인의식을 만든다자기주도성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 느낌이다.교사가 "오늘은 집을 그려봐요"라고 하면 아이는 시키는 대로 집을 그린다. 그런데 "오늘은 네.. 2026. 2. 19. "나도 할래" — 세 글자에 담긴 것 자유놀이 시간, 소꿉놀이 영역에서 두 아이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한 아이가 옆에 서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나도 할래."세 글자였다. 그런데 그 세 글자를 꺼내기까지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입학 초만 해도 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랬던 아이가 오늘 먼저 말을 걸었다.놀이 안에서 언어가 자란다는 게 이런 순간이다.말은 놀이 안에서 늘어난다만 3세 아이들의 언어 발달은 놀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사가 앞에서 단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놀이 안에서 필요해서 쓰는 말이 훨씬 빠르게 쌓인다.역할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쓰는 말을 들어보면 놀랍다. "손님이 왔어요, 어서 오세요", "이건 다 팔렸어요, 저쪽.. 2026. 2. 18. 말보다 행동이 먼저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관찰"이라고 대답한다.가르치는 것보다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다. 처음에는 그게 낯설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보고만 있어도 되나 싶은 마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아이를 제대로 보는 것이 교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아이들은 말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블록이 알려준 것3월 초, 한 아이가 매일 블록 영역에 혼자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냥 혼자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셨다. 혹시 친구 사귀기가 어려운 건 아닌지.나는 며칠 동안 그 아이를 조용히 관찰했다.아이는 블록을 무작위로 쌓는 게 아니었다. 색깔별로 먼저 분류하고.. 2026. 2. 18. 아침 등원, 배움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 반 아이들은 아침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논다.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블록 영역으로 달려가는 아이, 어제 하다 만 그림을 꺼내드는 아이, 창가에 놓인 화분을 들여다보는 아이. 교사가 "자, 이제 시작합시다"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나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 영역에 아이들이 몰리는 날은 뭔가 큰 구조물이 나올 것 같고, 역할놀이 영역이 조용한 날은 오후에 갑자기 소꿉놀이가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자유놀이 시간, 교사는 무엇을 하나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신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동안 교사는 뭘 하냐고.관찰한다.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다. 누가 누구와.. 2026. 2. 18. 그냥 노는 게 아닙니다, 유아 놀이의 교육적 가치 모래놀이 앞에 나란히 앉은 아이들유치원 모래놀이 영역에 아이 네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같은 모래, 같은 삽과 양동이. 그런데 들여다보니 네 명이 하는 것이 전부 달랐다.한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모래를 손으로 꼭꼭 눌렀다. 손바닥으로 느끼는 촉감에 집중하는 표정이었다. 옆 아이는 양동이에 모래를 가득 담았다가 뒤집고, 또 담았다가 뒤집기를 반복했다. 또 다른 아이는 숟가락으로 모래를 퍼서 그릇에 담으며 "이건 밥이야, 많이 먹어"라고 혼잣말을 했다. 마지막 아이는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선을 긋더니 "여기가 길이야"라며 작은 돌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나는 그 장면을 한참 지켜봤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네 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있었다.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배우고 있다모래를 손.. 2026. 2. 17. 이전 1 ···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