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47

텃밭에서 쑥을 뜯었어요 — 먹을 수 있는 것을 직접 기르고 만지는 경험 텃밭으로 가는 길5월 말의 어느 날, 아이들과 텃밭 나들이를 나갔다.텃밭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유치원 근처에 작은 텃밭이 있다.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그 텃밭에 봄이 되면 쑥이 무성하게 올라온다.아이들에게 오늘 할 일을 말해줬다. "쑥 뜯어올 거야."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쑥이 뭐예요?" 당연한 질문이다. 마트에서 포장된 나물만 보던 아이들에게 땅에서 자라는 쑥은 낯선 것이다.텃밭에 도착해서 쑥을 보여줬다. "이게 쑥이야."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들여다봤다. "이거 먹을 수 있어요?" "응,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손으로 뜯는다는 것쑥 뜯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줄기 아랫부분을 잡고 살짝 비틀어야 한다.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뿌리째 뽑힌다. 너.. 2026. 6. 12.
물장난은 텃밭에서 해요 — 공간의 경계를 알려주는 법 손 씻을 때마다 물장난을 했다6월 초의 어느 날, 한 아이가 손을 씻으러 갔다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가보니 세면대 앞에서 물을 이리저리 튀기고 있었다. 손을 씻는 게 아니라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미 옷이 젖어 있었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손 씻을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나는 그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서 말했다. "물장난 하고 싶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장난은 텃밭에서 해. 여기는 손 씻는 곳이야."혼내는 것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서는 이것을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안 된다가 아니라 여기서 해아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 대부분은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디서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장난이 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2026. 6. 12.
내 기분을 색으로 칠해봐요 — 유리병 감정 그림 이야기 오늘 기분이 무슨 색이에요?어느 날, 아이들 앞에 유리병 그림이 한 장씩 놓였다."오늘 내 기분을 색으로 칠해봐요."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어떤 색을 써야 한다는 말도, 이렇게 칠하면 된다는 말도 없었다. 그냥 유리병 그림 하나와 색연필. 아이들이 잠시 그림을 들여다봤다.그리고 각자 다른 색을 집어 들었다.빨간색을 집은 아이, 파란색을 고른 아이, 노란색과 주황색을 동시에 쥔 아이. 색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기 기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전에만 3세 아이들에게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기분이라는 것이 뭔지 아직 언어로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쁜 것과 신난 것의 차이, 슬픈 것과 무서운 것의 차이를 말로 구분하는 것은 꽤 높은 수준.. 2026. 6. 10.
치자 물에 손을 넣지 못하는 아이 — 낯선 감각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도 괜찮다 노란 물 앞에서 멈춰선 아이들6월 초, 교실에 노란 물이 담긴 그릇이 놓였다.치자로 물을 들인 것이었다. 진한 노란색이 선명했다. 손수건을 그 물에 담가서 염색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그런데 가까이 오면서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릇 가장자리에 서서 들여다보기만 했다. 옆 아이가 손을 담그고 주물러도, 자기 손은 넣지 않았다. 눈은 분명히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가지 않는 표정이었다.나는 서두르지 않았다.낯선 것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아이들이 새로운 감각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색깔이 있는 물, 점성이 다른 질감, 익숙하지 않은 냄새.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몸을 경계하게 만든다. 뇌가 아직 이 자극이 안전한지 판단하는 중인 것이다. 그 머뭇거림을 .. 2026. 6. 9.
사랑해 나뭇잎으로 점을 쳤어요 — 비 오는 날 나들이 이야기 비 오는 날도 나간다5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아이들이 등원하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물었다. "선생님, 오늘 나들이 못 가요?" 나는 우비와 장화를 꺼내면서 대답했다. "비 오는 날도 나가는 날이야."우비를 입는 것부터 아이들이 신이 났다. 평소에 안 입는 것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별한 날의 시작이다. 장화를 신고 우비 모자를 뒤집어쓰고 교실 문을 나서면, 그때부터 세상이 달라져 있다.빗속에서 나들이를 나가는 이유가 있다. 비 오는 날의 자연은 맑은 날과 전혀 다른 자극을 준다. 냄새가 다르고, 소리가 다르고, 땅의 질감이 다르다. 그 다름을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자연이 살아있다는 것을 가르친다.나뭇잎을 찾아다니다그날 나들이의 주제는 나뭇잎이었다.다양한 모양의 나뭇잎을 찾아보.. 2026. 6. 8.
까치 나뭇잎이라고 이름 지어줬어요 — 아이들이 자연에 이름 붙이는 순간 뾰족한 게 까치 닮았어요5월의 어느 날, 비나들이를 나갔다.비가 내리는 날에도 우리는 밖에 나간다.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을 오히려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와 다른 냄새, 다른 소리, 다른 촉감이 교실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그날 나들이에서 아이들과 나뭇잎을 찾았다. 다양한 모양의 나뭇잎을 관찰하는 활동이었다. 한 아이가 특이한 모양의 나뭇잎을 들고 왔다. 끝이 뾰족뾰족하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잎이었다.아이가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거 뾰족한 게 까치 닮았어요."나는 잠시 멈췄다. 까치. 까만색과 흰색이 섞인 새. 그 새의 어떤 부분이 이 나뭇잎과 닮았는지 어른의 눈으로는 바로 연결이 안 됐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 2026.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