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2 친구 운동화를 일부러 벗기던 아이 — 약속과 함께 노는 법을 배우는 시간 5월의 어느 날, 나들이를 가는 길이었다.도윤이가 앞서가는 하은이 뒤에서 운동화를 일부러 밟아 벗기고 있었다. 하은이가 "하지 마"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 후에 다시 같은 행동을 시도했다.나는 그 자리에서 도윤이를 다른 친구들과 떨어뜨렸다. 다른 아이들을 먼저 나들이 길로 보내고, 도윤이와 둘이 남았다."지금 친구들이랑 같이 갈 수 없어." 그 말을 듣자 도윤이가 바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나는 도윤이에게 두 가지를 제시했다. 유치원으로 돌아갈지, 정자에 앉아 있을지. 도윤이는 정자에 있겠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정자에 앉아서 다른 친구들이 저 멀리서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10분이 지났다. 나는 도윤이에게 물었다. "이제 약속을 지키면서 .. 2026. 6. 18. 가정과 유치원이 같은 말을 할 때 — 날적이가 만드는 연결 날적이가 뭔가요우리 유치원에는 날적이라는 것이 있다.날마다 적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교사가 그날 아이에게 있었던 일, 관찰한 것, 전달하고 싶은 것을 적어서 가정에 보낸다. 부모님은 집에서 있었던 일, 아이의 상태, 궁금한 것을 적어서 다시 보내온다. 매일 오가는 짧은 편지 같은 것이다.처음에 이 시스템을 설명하면 부모님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매일 써야 하는 건가요, 뭘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달라진다. 날적이가 쌓일수록 교사와 부모 사이에 아이를 함께 보는 눈이 생긴다.같은 말을 하는 것의 힘6월 초에 한 아이와 관련해서 날적이를 주고받은 일이 있었다.손을 씻을 때마다 물장난을 하는 것이 반복됐다. 나는 날적이에 이렇게 적었다. "유치원에서는 물장난하는 곳이 텃밭이라고.. 2026. 6. 16. 이랬다 저랬다 하는 아이, 어떻게 대응할까 — 선택의 경험을 주는 훈육 낮잠 자리를 세 번 바꾼 아이6월의 어느 낮잠 시간이었다.한 아이가 눕더니 옆에 있는 친구를 보고 말했다. "나 유주 옆에서 자고 싶어요." 자리를 옮겨줬다. 잠시 후 또 말했다. "나 수호 옆에서 자고 싶어요." 또 옮겨줬다. 그러더니 다시 말했다. "나 가희 옆에서 자고 싶어요."나는 멈췄다.이번에는 옮겨주지 않았다. 대신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서 말했다. "지금은 도하 옆에서 자거나, 혼자 자거나 둘 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어." 아이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다렸다. 울음이 잦아들 무렵 아이가 말했다. "도하 옆에서 잘게요." 그리고 누웠다.왜 계속 바꾸는 걸까이랬다 저랬다 하는 아이를 보면 "고집이 세다", "욕심이 많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면 이.. 2026. 6. 15. 버들잎도령 이야기를 나들이에서 만났어요 — 옛이야기와 자연이 만나는 순간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4월 어느 날, 아이들에게 버들잎도령 이야기를 들려줬다.우리 반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책을 그대로 읽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그랬다. 버들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야기, 도령이 버들잎을 타고 흘러가는 이야기. 아이들이 조용히 들었다.다음 날 나들이를 나갔다. 아이들과 걷다가 길가에 버드나무가 있었다. 길고 가는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내가 멈추기도 전에 한 아이가 소리쳤다."선생님, 저거 버들잎이에요!"어제 들은 이야기 속 버들잎을 오늘 실제로 만난 것이다.이야기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아이들이 버드나무 앞으로 달려갔다.잎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봤다. "이거 물에 띄우면 흘러가겠다", "도령이 이 잎을 탔겠다." 어제 들은 이야기가 .. 2026. 6. 14. 먹그림, 선 하나를 긋는 것부터 시작해요 — 조절의 경험 먹물 앞에서5월 말, 교실에 먹물과 붓이 놓였다.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으면서 먹물을 들여다봤다. 검고 진한 색. 냄새도 낯설었다. "이게 뭐예요?" "붓으로 그리는 거야, 먹그림이라고 해." 아이들이 붓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먹그림은 수정이 안 된다. 한번 그으면 지울 수 없다. 아이들에게 그건 처음 경험하는 조건이었다. 연필은 지우개로 지울 수 있고, 크레파스는 덧칠할 수 있다. 그런데 먹물은 한번 그은 선이 그대로 남는다.그 조건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쳤다.선을 긋기 전에 멈추는 아이들처음에 아이들이 천천해졌다.평소 미술 활동에서 빠르게 칠하던 아이들이 붓을 든 채로 잠시 멈췄다. 어디에 선을 그을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멈춤이 새로웠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신중함이 먹그림 앞에서.. 2026. 6. 13. 텃밭에서 쑥을 뜯었어요 — 먹을 수 있는 것을 직접 기르고 만지는 경험 텃밭으로 가는 길5월 말의 어느 날, 아이들과 텃밭 나들이를 나갔다.텃밭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유치원 근처에 작은 텃밭이 있다.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그 텃밭에 봄이 되면 쑥이 무성하게 올라온다.아이들에게 오늘 할 일을 말해줬다. "쑥 뜯어올 거야."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쑥이 뭐예요?" 당연한 질문이다. 마트에서 포장된 나물만 보던 아이들에게 땅에서 자라는 쑥은 낯선 것이다.텃밭에 도착해서 쑥을 보여줬다. "이게 쑥이야."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들여다봤다. "이거 먹을 수 있어요?" "응,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손으로 뜯는다는 것쑥 뜯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줄기 아랫부분을 잡고 살짝 비틀어야 한다.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뿌리째 뽑힌다. 너.. 2026. 6. 12.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