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중심교육47 밀가루 반죽 앞에서 멈춰선 아이 어느 날 오전, 미술 영역에 밀가루 반죽을 꺼내놓았다.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표정은 분명히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개입하지 않고 기다렸다. 옆 아이가 반죽을 꾹꾹 누르며 "선생님, 이거 진짜 부드러워요"라고 말하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손가락 하나를 살짝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손으로 반죽을 집어 들었다.그 아이는 그날 오전 내내 반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감각 놀이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한번 몸으로 받아들이면 그 자극이 아이를 완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왜 5세에 감각 놀이가 중요한가만 5세 아이들은 몸으로 배운다. 이 시기는 감각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능.. 2026. 2. 20. 교실 문을 열면서 시작된 배움 아침에 교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배움은 시작된다.가방을 내려놓으며 어제 만들다 만 블록 구조물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아이, 창가 화분에 물이 필요한지 들여다보는 아이, 친구가 오자마자 "나 어제 꿈에서 공룡 봤어"라고 말을 거는 아이. 교사가 "자, 시작합시다"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가 열리고 있다.나는 이 장면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배움은 앉아서 듣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몸으로 먼저 안다어느 날 바깥 나들이에서 아이들이 경사진 흙길을 만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신이 나서. 몇 번을 반복하다가 한 아이가 멈춰서 말했다. "모래가 많은 데가 더 잘 미끄러져."중력을 배웠다. 마찰을 경험했다. 교과서 없이, 설.. 2026. 2. 20. 교실을 바꿨더니 아이들이 달라졌다 3월 초, 우리 교실 블록 영역은 한쪽 구석에 작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몇 개 쌓다가 금방 자리를 떴다. 뭔가 아쉬웠다.한 주가 지나고 블록 영역을 교실 가운데로 옮기고 공간을 두 배로 넓혔다. 그랬더니 달라졌다. 혼자 쌓던 아이들이 옆 아이와 연결하기 시작했고, 단순히 탑을 쌓던 놀이가 "여기가 주차장이야, 저기가 집이야"로 이어지는 마을 구성으로 발전했다. 같은 블록이었다. 같은 아이들이었다. 공간만 바뀌었는데 놀이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졌다. 환경이 말을 건다아이들은 공간에 반응한다. 넓고 탁 트인 공간에서는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하고, 아늑하고 작은 공간에서는 조용히 앉아 무언가에 집중한다. 창가에 작은 의자 하나만 놓아도 아이들은 그 자리를 좋아하는 책읽기 코너로 만들어낸다.그래서 교실 환.. 2026. 2. 19.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본다 학기 초, 한 아버지가 상담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선생님, 우리 아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뭔가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요."당연한 마음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유아교육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시험 점수나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나는 그 아버지께 학급일지를 꺼내 보여드렸다.기록이 쌓이면 성장이 보인다나는 아이들의 하루를 매일 기록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 누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디서 멈칫했는지, 어떤 순간에 활짝 웃었는지를 짧게 적어둔다.처음에는 그냥 메모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쌓이면 전혀 다른 것이 된다.3월에 혼자 구석에서.. 2026. 2. 19. 스스로 고른 놀이는 다르다 어느 날 자유놀이 시간에 민재가 미술 영역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별다른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색연필을 집어 들고 그리기 시작했는데, 30분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다 그리고 나서는 나에게 가져와 "선생님, 이거 봐요"라고 했다. 종이 가득 알 수 없는 선과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민재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우리 집이고, 이건 엄마, 이건 강아지."내가 주제를 정해줬다면 30분을 앉아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선택이 주인의식을 만든다자기주도성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 느낌이다.교사가 "오늘은 집을 그려봐요"라고 하면 아이는 시키는 대로 집을 그린다. 그런데 "오늘은 네.. 2026. 2. 19. "나도 할래" — 세 글자에 담긴 것 자유놀이 시간, 소꿉놀이 영역에서 두 아이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한 아이가 옆에 서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나도 할래."세 글자였다. 그런데 그 세 글자를 꺼내기까지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입학 초만 해도 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랬던 아이가 오늘 먼저 말을 걸었다.놀이 안에서 언어가 자란다는 게 이런 순간이다.말은 놀이 안에서 늘어난다만 3세 아이들의 언어 발달은 놀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사가 앞에서 단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놀이 안에서 필요해서 쓰는 말이 훨씬 빠르게 쌓인다.역할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쓰는 말을 들어보면 놀랍다. "손님이 왔어요, 어서 오세요", "이건 다 팔렸어요, 저쪽.. 2026. 2. 18. 이전 1 ···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