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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놀이 이야기

까치 나뭇잎이라고 이름 지어줬어요 — 아이들이 자연에 이름 붙이는 순간

by soriedus 2026. 6. 7.

까치 나뭇잎이라고 이름 지어줬어요 — 아이들이 자연에 이름 붙이는 순간
까치 나뭇잎이라고 이름 지어줬어요 — 아이들이 자연에 이름 붙이는 순간

뾰족한 게 까치 닮았어요

5월의 어느 날, 비나들이를 나갔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우리는 밖에 나간다.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을 오히려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와 다른 냄새, 다른 소리, 다른 촉감이 교실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그날 나들이에서 아이들과 나뭇잎을 찾았다. 다양한 모양의 나뭇잎을 관찰하는 활동이었다. 한 아이가 특이한 모양의 나뭇잎을 들고 왔다. 끝이 뾰족뾰족하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잎이었다.

아이가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거 뾰족한 게 까치 닮았어요."

나는 잠시 멈췄다. 까치. 까만색과 흰색이 섞인 새. 그 새의 어떤 부분이 이 나뭇잎과 닮았는지 어른의 눈으로는 바로 연결이 안 됐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그럼 이름을 지어줄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했다. "까치 나뭇잎이에요."

이름을 붙인다는

아이들은 자연에서 발견한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한다.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어도 된다. 자기가 발견한 것, 자기가 느낀 것을 담은 이름. "이건 내가 지어준 이름이야"라는 감각. 그게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어른들은 대개 이름을 알려주려 한다. "이건 단풍나무 잎이야", "이건 은행잎이야." 물론 그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가 먼저 자기만의 이름을 붙이는 경험이 먼저 쌓여야 한다.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경험이 있어야, 나중에 정식 이름을 배울 때도 그것이 살아있는 정보가 된다.

까치 나뭇잎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 아이는 그날 이후 그 나뭇잎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디서 보더라도 "까치 나뭇잎이다!"라고 알아본다. 자기가 이름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해 나뭇잎의 탄생

그날 나들이에서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나뭇잎을 가지고 꽃잎 점치기처럼 놀이를 시작했다. 나뭇잎 하나씩 떼어내면서 "사랑한다, 안 사랑한다"를 번갈아 말하는 것이다. 꽃잎으로 하는 그 놀이를 나뭇잎으로 가져온 것이다.

어떤 나뭇잎이 이 놀이에 잘 맞는지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내기 시작했다. 잎이 너무 크면 안 되고, 작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것이 좋다. 그런 나뭇잎을 발견한 아이가 가져오면 다른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나중에 교실로 돌아와서 이 나뭇잎에 이름을 붙여줄 때, 아이들이 모여서 한참 의논했다. "뭐라고 부를까?"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가, 결국 "사랑해 나뭇잎"이 됐다.

그날 이후 사랑해 나뭇잎이라는 이름이 교실 언어가 됐다. 나들이를 나가면 "사랑해 나뭇잎 있나 봐요"라고 찾아다니는 아이들이 생겼다.

이름이 기억을 만든다

아이들이 자연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단순한 언어 놀이가 아니다.

이름이 붙은 것은 기억된다. 까치 나뭇잎을 발견한 날, 비가 왔다는 것, 우비를 입고 나갔다는 것, 함께 나간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 이름 하나에 그날의 기억이 붙어 있다.

나는 그날 학급일지에 아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적어뒀다. "뾰족한 게 까치 닮았어요." 그 문장을 나중에 다시 읽을 때, 그날 나들이의 전체 풍경이 살아난다.

아이들의 말은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것들이 많다. 어른의 언어로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생생하고 정확한 표현들. 그것들을 기록해두는 것이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비 오는 날, 나뭇잎 하나에 이름을 붙인 그 순간이 그 아이에게는 평생 기억될 봄날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