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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을 다 치웠더니 생긴 일 어느 날 오후 자유놀이 시간에 교실 한쪽 영역의 교구를 모두 정리하고 빈 공간을 만들어뒀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그 공간에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다.처음에는 아이들이 멀뚱멀뚱 서서 바라봤다. "선생님, 여기 왜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더니 잠시 후 한 아이가 자기 신발을 벗어서 그 공간에 놓았다. "이거 자동차야." 그 말 한마디가 신호탄이었다.다른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볼록한 블록 하나를 가져와서 "이거 집이야"라고 했다. 빈 공간은 금세 아이들이 만들어낸 마을이 됐다. 신발로 만든 자동차가 블록 집 앞에 주차됐다.정해진 장난감이 없을 때, 아이들의 상상력은 오히려 더 크게 작동한다. 장난감이 상상력을 막는 경우도 있다장난감에는 정해진 기능이 있다. .. 2026. 2. 24.
장난감은 많은데 왜 5분을 못 노나요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장난감은 엄청 많은데 맨날 심심하다고 해요. 5분도 못 가고 딴 걸 찾아요."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이 말이 낯설지 않다. 비싸게 산 교구가 한쪽에 쌓여 있고, 아이는 여전히 "놀아줘"를 외치는 상황. 문제가 뭘까 고민하다가 유치원 교실을 떠올렸다.우리 교실에는 특별히 비싼 장난감이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유놀이 시간에 한 영역에서 30분, 길게는 한 시간도 집중해서 논다. 집과 교실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교사이자 엄마의 눈으로 오랫동안 생각해봤다.결론은 장난감의 수나 가격이 아니었다. 공간의 구성이었다. 장난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유치원 교실에는 한 영역에 놀잇감이 많지 않다. 블록 영역에는 블록만, 미술 영역에는 미술 도구만. 그리고 아이들이 .. 2026. 2. 23.
"선생님은 들어오면 안 돼요" 어느 날 아침, 쌓기 영역이 평소보다 조용했다.가까이 가보니 블록을 높이 쌓아 올린 벽 뒤에서 아이 세 명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지훈이가 나를 보자마자 손을 들어 막았다. "선생님은 들어오면 안 돼요. 여기 비밀 기지예요."나는 멈췄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섰다."알겠어. 선생님은 여기 있을게."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지만 기다렸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세계에 어른이 섣불리 들어가면 그 세계가 무너지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벽 앞에서 생긴 일비밀 기지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지훈이와 수아가 블록을 높이 쌓아 지붕을 얹으려는 순간,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처음에는 둘 다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더니 지훈이가 말했다. "밑에를 더 넓게 해야 해." 수아가 고개를 끄.. 2026. 2. 22.
밀가루 반죽 앞에서 멈춰선 아이 어느 날 오전, 미술 영역에 밀가루 반죽을 꺼내놓았다.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표정은 분명히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개입하지 않고 기다렸다. 옆 아이가 반죽을 꾹꾹 누르며 "선생님, 이거 진짜 부드러워요"라고 말하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손가락 하나를 살짝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손으로 반죽을 집어 들었다.그 아이는 그날 오전 내내 반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감각 놀이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한번 몸으로 받아들이면 그 자극이 아이를 완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왜 5세에 감각 놀이가 중요한가만 5세 아이들은 몸으로 배운다. 이 시기는 감각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능.. 2026. 2. 20.
교실 문을 열면서 시작된 배움 아침에 교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배움은 시작된다.가방을 내려놓으며 어제 만들다 만 블록 구조물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아이, 창가 화분에 물이 필요한지 들여다보는 아이, 친구가 오자마자 "나 어제 꿈에서 공룡 봤어"라고 말을 거는 아이. 교사가 "자, 시작합시다"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가 열리고 있다.나는 이 장면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배움은 앉아서 듣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몸으로 먼저 안다어느 날 바깥 나들이에서 아이들이 경사진 흙길을 만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신이 나서. 몇 번을 반복하다가 한 아이가 멈춰서 말했다. "모래가 많은 데가 더 잘 미끄러져."중력을 배웠다. 마찰을 경험했다. 교과서 없이, 설.. 2026. 2. 20.
교실을 바꿨더니 아이들이 달라졌다 3월 초, 우리 교실 블록 영역은 한쪽 구석에 작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몇 개 쌓다가 금방 자리를 떴다. 뭔가 아쉬웠다.한 주가 지나고 블록 영역을 교실 가운데로 옮기고 공간을 두 배로 넓혔다. 그랬더니 달라졌다. 혼자 쌓던 아이들이 옆 아이와 연결하기 시작했고, 단순히 탑을 쌓던 놀이가 "여기가 주차장이야, 저기가 집이야"로 이어지는 마을 구성으로 발전했다. 같은 블록이었다. 같은 아이들이었다. 공간만 바뀌었는데 놀이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졌다. 환경이 말을 건다아이들은 공간에 반응한다. 넓고 탁 트인 공간에서는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하고, 아늑하고 작은 공간에서는 조용히 앉아 무언가에 집중한다. 창가에 작은 의자 하나만 놓아도 아이들은 그 자리를 좋아하는 책읽기 코너로 만들어낸다.그래서 교실 환.. 2026. 2. 19.